Novelle

미션 임파서블

아스프빌즈 2024. 3. 3. 02:19

 

 


'무조건'적이었다. 말 그대로 어떠한 추가 조건도 없었다. 배려 없고 난폭한, 우악스럽다고 느껴질 만큼의 강한 압박만이 내용의 전부였다. 그의 명령은 다름 아닌 살인이었다. 마지막 명령이었다. 따라야만 했다.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임무였다. 이것만 끝내면 나는 자유다. 난 그 자그마한 자유를 위해 살인을 해야한다. 

 

무거운 바람이 뺨을 꽝꽝 내리친다. 얼얼한 뺨에 마른 등나무껍질같은 손등을 대본다. 괜히 쓸어내려본다. 거친 마찰음이 과장되게 들려온다. 푸석한 피부에 이따금씩 작은 생채기가 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사실 고작 이따위의 <지연>은 사실 이 상황을 바꾸어줄 편도가 전혀 되어줄 수 없다. 즉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그에 비해 그의 명령과 나의 책임감은 나란히 여전하다. 어떤 이유에선지 그의 명령에서 기인하는 간절함을 느꼈다. 갑자기 그가 꼭 나에게 그 명령을 내려야만하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인 것 처럼 느껴진다는 말이다. 그런 운명에 반하는 어떠한 조건문조차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람. 그의 단호한 명령 밑에는 사실 무한한 연민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었을까? 알 수 없다. 나는 도저히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결국 명령은 한편으로는 부탁의 형태를 띈다.

 

총자루를 쥔 내 손이 달달 떨리는 게 참으로 우습다. 나는 그의 수발을 드는 하수인에 불과할 뿐이지, 냉담하고 '쿨'한 킬러 캐릭터랑은 거리가 멀다. 두렵다. 뭐가 두렵지? 경찰이 나를 쫓을까봐 두려운 걸까? 감옥에 갇힐까봐? 경찰도, 감옥도 아니라면 그저 누가 나를 '쫓는다' 라는 발칙한 상상 자체가 두렵나? 두려우면 어째야하지? 피해야하나? 그저 그 두려움을 받아들여 승화시키는 경지에 이르는 자로 살 수는 없는가? 나는 살고, 내 눈앞에서 무릎 꿇은 이 남자는 죽나? 단 한발의 총성이 들리면, 감았던 눈을 뜨면 이 남자는 죽어있을 것이다. 아니,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오로지 그 단 한발. '내가 알던 살인'과는 다르다. 분명히 다르다. 

 

나는 살인을 무차별적인 칼부림, 난도질 혹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총을 쏴대거 하는 등의, 대충 그 정도의 성의없는 잔혹함으로만 치부했구나. 이 찰나의 순간에 또 하필이면 쓸 데 없는 깨달음까지 얻는다.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렇게도 생각이 든다. 그의 명령은, 아니 부탁은 사실 어떻게 본다면 동등함의 가치를 담은 행위, 사사로운 감정이나 복수감 없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고. 다만 이번에는 단지 그 <대상>이 다수가 아닌 단 한명일 뿐인, 아주 예외적이고도 유별난 순간일 뿐이라고. 반복은 없다고. 적어도 연쇄살인범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감 혹은 포부를 가지는 내가 참. 우습다.

 

지금 이 모든 순간 실시간으로 거론되는 '나의 살인' 은 모두에게 평등한 난사가 아닌, 오로지 단 한 명만을 향한 구애다. 총은 내가 쥐기 전부터 장전되어 있었고, 나의 (지금으로부터 24시간 아니 어쩌면 3일 전, 아니 어쩌면 3년 전까지의) 알리바이는 완벽하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절대적으로 의심을 받을 리 없었고, 사인과 사고 정황 모두 다 완벽하게 짜여진 시나리오 안에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그 남자가 죽을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완성한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이 남자를 위한 것이다.

 

 

나는 말라비틀어진 입술 각질 사이로 옅은 피맛을 씹어대며 낮게 지껄였다.

 

결국.

 

 

나는 못하겠어.

 

 

안 할 이유는 없지만서도,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어찌보면 자신이 없었다고 해야하려나. 나는 이렇게 비로소 명령을 거부하는 이단아가 되었고, 책임감 없는 비겁한 인간이 되었으며 어쩜 뭔가를 해보지도 않고 결론내리는 논리학자가 되었다. 내 발끝을 쳐다보고 있자면 일정 비율의 각도에 걸리는 꿇린 무릎. 나와 이 공간에서 일정한 양의 공기를 <공유>하고 있는 이 남자를, 나는 단 한 순간에 쓰러트릴 수 없었다. 정말이지 이 정도로도 배짱 없고, 포부도 없다. 

 

적나라한 포기 선언을 방금 해놓고서 이따금씩 '다시' 명령을 실행하는 나를 다시 한번 머릿속에 그려본다. 생각보다 무섭다. 소름이 끼쳐온다. 오도도도, 오도도도…. 발끝은 저려오다 못해 오그라들었고, 쩍쩍 갈라진 손에 쥔 총자루는 눈에 띄일 정도로 달그락달그락 내부 장비소리를 울려댄다. 나는 떨고 있었다. 명령을 듣자마자 수천번, 수만번 연습하고 상상했는데. 실제 상황에서는 어줍짢은 흉내 조차 못내겠는 거다. 눈 감고 딱 한번 탕. 하면 끝인데. 내 '탕' 은 타아아아아아아…. 총알이 그를 관통하는 마지막 음파의 진동이 느껴지지 않은 탕, 이었을 것이고. 이 남자가 즉사할 가능성은 타아아아아앙 소리에 맞춰 더욱 더 떨어지겠지.

 

무릎 꿇은 남자는 안대에 가려진 눈 대신 더러운 눈물 자욱으로 나를 <본다>. 보고 있다.

 

 

 

 

-정 그러면 네가 해.

 

 

 

너는 죽어도 내게 합리적인 죄책감 따위를 주고 싶어 안달이 난거야. 그렇게도 외쳐봤다. 나도 울어봤다. 하지만 내가 고작 울 때에 '그'는 심히 좌절했다. 내가 어쩔 도리가 없는 깊이로 추락한다. 남자는 여전히 침묵하며 울고, 지겹게도 나에게 명령한다. 자신을 죽이라고, 죽여달라고.

 

 

 

 

 

04.02.2013 + 03.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