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0대의 끝에 서서
도저히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나는, 이제는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깨달음, 내심 기대했던 충격의 부재와 함께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자기연민에 취해 베개를 적시고 울었던 나는 이제는 자기연민에 취한 인간 부류를 기피하고, 나또한 그러지 않으려고 의식하고 조금 더 차가운 온도에 또 다른 나를 배치한다. 조금 덜 들끓고, 조금 덜 울어도 괜찮도록. 한해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비켜주지 않는 '나를 사랑하는 법'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법' 대충 그런 형식의 책들을 읽지 않았어도, 여전히 나는 괜찮다. 최고인 어른으로 자라지는 않았고, 여전히 모자르고 어린 아이같지만서도 나는 괜찮다. 내가 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겨우 그 정도다. 유별나지도 않고, 생각했던 것 만큼 대단하고 감동적이지도 않고. 그럭저럭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딱 그 정도.
동시에 나는 나를 너무 잘 아는 인간이기에, 내가 얼마만큼 잘 할 수있는 인간인 지에 대해 혹은 나는 내가 선택한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솔직히 넌지시정도까지는 알고 있었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내가 살고자하는 삶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귀찮다는 허울좋은 회피로 '언제가는' 이라는 먼 기약만을 보고 살았던 것도 알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아직도 어리고, 철없고, 아직 내게 오지 않은 어려움과 고생길을 두려워한다. 20대 벼랑 끝에 선 나는(이제서야)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피하지는 않으려한다. 그것이 다가와도, 그것을 감내하고 충분히 끌어안고, 그것과 고생하고 또 울고, 한번도 겪지 않은 좌절과 허무를 맛보고 토하더라도, 내가 겪는 고통과 슬픔이 영원하지는 않을 거라는 그 작은 희망을 안고 살아가려 한다. 그래도 괜찮아, 라는 정말 뻔해빠진 그런 말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어른이 되기를 바라면서. 치열하게 싱클레어로 살고, 데미안이 되었다가도 결국 말미엔 다시 싱클레어 그 자체로 살 수 있게!
과거를 후회하고 창피해하는 나였기에 일기를 자주 쓰지 않았던 나다. 대신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그 순간을, 그 장면을 담기위해 사진을 찍었던 나다. 나쁜 건 다 잊고 까먹고, 좋은 것만 기억하는 편협했던 나다. 과거형으로 쓰다보니 현재는 그런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사실 여전히 그렇다. 앞으로 당분간도 그럴 듯하다. 나는 나한테 그 정도는 봐주면서 살려고. 대신 이제껏 스스로에게 많이 허용해줬던 많은 것들에 한해서는 조금 더 엄격한 관리자가 되려고 <<다짐>>했다. 새해 분위기를 다짐,일기, 목표 이런 거 때문에 싫어하는 인간이지만서도 말이다.
물론 창피했던 과거도 결코 쉽게 버리지는 않아서, 가끔 몇년마다 그 작은 일기장들을 펼쳐보면 감회(?)가 새롭기도 한데, 그건 아마도 '마이매드팻 다이어리'의 어느 시즌 중 한 장면-자기혐오를 일삼는 주인공에게 상담선생님이 지금 했던 말을 10대의 어렸던 너에게 해보라고 하고, 주인공은 어렸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결코 그 말을 내뱉지 않는-을 이제는 이해해서일까 싶다. 10대의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대체 저게 왜 슬프지? 저게 무슨 해결방식이지? 라고 했건만. 10년도 지나지 않아 그 장면만 봐도 눈물을 펑펑 흘리는 나는. 이제 그걸 보고 이해할만큼 정도는 컸다 싶은 거지.
여튼. 20대의 나는 10대의 나에게 진짜 10대 때 했던 나의 자기혐오적 발언들과 생각을 결코 내뱉지 않을 것 처럼, 30대의 내가 20대의 나에게, 그리고 그 후의 거듭에도 그러지 않을 거야. 왜 이것도 다짐형으로 끝나는 문장인지는 모르겠다만. (다시 한번)이 정도 작은 다짐은 봐주기로 하자. 나이를 떠나서 나는 나 나름대로의 아프고 힘들었던 과거들과 함께 자라 온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여전히 다 떨치지도 못하고 어느 조각 조각은 내 살에 박힌 채로 나와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을거야.
내가 읽은 모든 글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을 꺼낼 때에 받는 감동은, von 여전히 - bis 언제나 일거라서, 그래서 좋다. 그래서 데미안이 좋고. 합리화가 될 수 있는 모든 생각이 어떻게든 반성이 되는 과정이 좋고. 다른 종교지만 불교 말씀이 좋고. 아마도 나는 죽을 때까지 부처의 마음으로 살 수 없는 유한한 인간일테지만 그래도 또 깨닫고 다시 반복하고 다시 수정하고. 그냥 그 모든 과정 속에 있다가 과거의 짙은 내 후회를 조금씩이나마 긁어내고, 후회하지 않는 글을 쓰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인정받지 않아도 되는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거들떠도 보지 않을 이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등등 여차저차 소소하고 바쁘게 살아봐야지. 그것만 해도 잘 했다고 해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