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o Irrealis

<프로이트의 그늘 아래서, 파트2> : Roma - Berlin

아스프빌즈 2024. 2. 27. 23:00



<프로이트의 그늘 아래서, 파트2> 

 

 

 

S.68-71

 

프로이트라면 이런 나를 이해했을 것이다. 나는 로마를 갈망하지만, 로마는 왠지 불안감을 일으키고 당혹스러울 만큼 비실재적이라고 말해도 될 만한 감응으로 다가온다. 로마와 관련되어 행복한 기억도 별로 없고, 로마는 내가 로마에서 그 무엇보다 원했던 몇 가지를 한번도 내어 준 적이 없다. 이 몇 가지는 여전히 미숙한 욕망의 유령처럼 사라지지 않고 나 없이, 나도 모르게 로마를 서성거린다. 내가 알아낸 모든 로마는 다음의 로마로 흘러들어가거나 파고 들어갈 뿐 그중 단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50년전 내가 처음으로 본 로마. 내가 버리고 떠난 로마. 수년이 지나 다시 찾았으나 로마는 나를 기다리지 않았고 나는 이미 기회를 놓쳤기에 결국 찾지 못한 로마. 어떤 사람과 방문했다가 그 뒤에 또 다른 사람과 재방문해도 차츰 별 차이를 못 느낀 로마. 그토록 여러 해가 지났어도 여전히 가 보지 않은 로마. 그 웅장한 고대 석조 건축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가 묻혀 있어 눈에 보이지 않고 붙잡기 어렵고 일시적이며 여전히 미완성인 채 해석되는 미완의 상태여서, 내가 완전히 다 헤아리지 못한 로마. 맨 밑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는 영원한 매립지 로마. 나 나름의 여러 층과 단이 쌓여있는 로마. 짐을 푼 호텔 객실 창문을 열고 응시하노라면 실제같지 않은 로마. 끊임없이 나를 부르다가도 그곳이 어디든 내가 온 곳으로 되돌려 보내는 로마. 내 모든 것이 너의 것이지만 나는 결코 너의 것이 되지않아, 라고 말하는 것처럼. 너무 실제가 되면 내가 버리고 마는 로마. 로마가 나를 놓기전에 내가 놓아버리는 로마. 올 때마다 내가 찾는 것은 사실상 로마가 아니라 바로 나이기에 그안에 로마 자체보다 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품고 있으나 나를 찾으려면 로마도 찾아내야 하는 로마. 내가 다른 사람들을 데려와서 보여 주되, 우리가 같이 찾아온 그곳이 그들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이어야 하는 로마. 나 없이도 여전히 괜찮을 거라고는 믿고 싶지 않은 로마. 언젠가 그렇게 되길 바랐고 그렇게 되어야 했으나 그렇게 되지 못한 뒤로 다시 소생하도록 돌보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해둔 자아의 탄생지, 로마. 손을 뻗어 닿을 방법을 잘 모르고, 그 방법을 영영 배울 수도 없어 손을 뻗으면서도 좀처럼 닿지 못하는 로마.

 

 

 나는 더 이상 로마인이라 할 수 없지만 일단 로마에서 여행 가방을 풀고 나면 자각이 된다. 일이 제대로 돌아가고 중심이 잡힌 듯한 기분이 들면서 로마가 고향으로 느껴진다. 듣기로는 내 아파트를 나와서 자니콜로언덕을 내려가 트라스테베레에 이르는 길이 7~9가지 된다는데, 여태 그 길들을 찾지 않았다. 아직 지름길을 익히고 싶지 않다. 익숙함 대신 내가 새로운 곳에 왔고 새로운 가능성이 숱하게 펼쳐져여 있다고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고 싶다. 어쩌면 요즘 행복을 느끼는 것도 의무에 얽매일 필요 없이 내 마음대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재치 있고 머리 좋은 로마인들이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가기 전에 들르는 와인 바, 일 고체토에 앉아 저녁나절을 즐기는 덕분이 아닐까 싶다. 나도 몇 번 그랬지만 일 고체토에서는 술을 마시다 마음이 바뀌어 저녁까지 먹는 이들도 있다. 그냥 와인 한 잔 마시러 왔다가 저녁까지 먹어 버리는 로마의 방식이 맘에 든다. 가끔은 와인을 마시고 나서 와인 한 병을 사들고 친구들을 보러 트라스테베레로 향한다. 집에 돌아가고 싶어지면 버스대신 걸어서 언덕을 오르는 날도 있다.

 

 

 밤에 테베강을 가로질러 가다가 조명 밝힌 산탄젤로성으로 시선을 돌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옅은 황갈색 성벽을 바라보는 것도 즐겁고, 한밤의 성 베드로대성당도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언젠가는 폰타노네에 가서 그 자리에 선 채 그 도시와 조명으로 환하게 밝힌 그 멋진 돔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며, 그 모습이 금세 그리워질 걸 알아채겠지.

 

 머무는 곳도 맘에 든다.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발코니가 딸려 있고, 운이 좋을 땐 친구 몇이 찾아와 펠리니나 소렌티노 영화의 인물들처럼 도시의 야경을 내다보고 술을 홀짝이며 말없이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곤 한다. 자기 삶에서 여전히 부족하거나 변화를 바라는 것이 뭔지, 혹은 강 건너편에서 자꾸만 손짓해 부르는 것이 뭘까 생각하지만, 우리가 바꾸고 싶지 않은 한 가지는 이곳에 머무는 것이다.

 

 

빙켈만의 말을 바꾸어 보자면 삶은 나에게 이렇게 해 줄 빚이 있다. 나는 이 순간을, 이 발코니를, 이 친구들을, 이 술을 그토록 오랜 세월에 대한 빚으로 돌려받을 자격이 있다.

 

 

 


 

 나에게 이 도시는 고향 같은 곳이다. 얼마 전에 읽은 책의 저자가 그랬다. 고향이란 처음으로 세상에 말을 거는 곳이라고.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그 표식은 때때로 이동하지만, 더러는 닻을 내리고 영원히 머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