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슐링크(김재혁 옮김): 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2013
S. 76
나는 일어나 앉았다. 침대 옆 조그만 탁자 위에 올려 놓았던 쪽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일어나서 탁자의 옆쪽과 아래쪽 그리고 침대 밑과 침대 속까지 찾아보았다.
“도무지 알 수 없군요. 아침 식사를 가지고 금방 돌아오겠다는 쪽지를 써놓았거든요.”
S. 77
우리는 더이상 싸우지 않았다.
한나는 분노 했었지만 미하엘은 어리둥절 했기에 이 둘은 싸울 수 없다. 분노와 억울함은 서로 다르고, 한나와 미하엘도 다르다. 그래서 이 상황은 단순히 문맹에 대한 복선이라기보다 이 둘이 얼마나 다른 인간인가를 잘 보여준다. 한나는 싸움과 화해가 급진행되는 이 애매한 상황 이후에 바로 다시 책을 읽어달라고 조른다. 그런 그녀의 모습과 그 열정이 아이의 변덕같이 해맑은 것에 마음이 쓰일만도 하지 않은가.
얼마나 읽고 싶었니, 얼마나 궁금했니, 얼마나 재미있니?
*미하엘의 두가지 기억
S. 84
나는 그녀의 모습들을 내 기억 속에 저장해놓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마음속의 스크린에 투사하면 가기에 비친 그림들을 조금도 변하거나 마모되지 않은 채로 바라볼 수 있다.
S. 131
그러나 기억은 저장된 파일을 다시 불러내는 것에 불과했다. 나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S.84) 부엌에서 스타킹을 신던, 타월을 들고 있던, 자전거를 타던, 파랑과 흰색 줄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있던, 한나를 마음 속 스크린으로 투사해서 기억하는 것엔 애정이 담겨 있다. 그러나 (S.131에선) 현재 시점 재판을 받는 한나를 보는 미하엘은 그녀에 대한 기억은 그저 기억일 뿐이라고 말한다. 스크린에 투사해서 되새겨 볼 수 있었던 기억과 그저 저장된 파일과 같은 기억의 차이는 뭘까? 두 기억 모두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후자에는 미하엘의 애정이, 감정이, 사적인 감성이 부재한다. 그렇게 변하지 않는 기억은 주관적인 애정에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존재성을 달리 하게 된다. 미하엘의 시선이 점점 더 차가워진다.
S. 170-171
‘그리고 아니다’
(중략)
그녀는 자신의 이익을 좇은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진실과 자신의 정의를 위하여 싸운 것이다. 자신에 대해 약간은 위장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완전히 솔직해질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 보일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안타까운 진실이요 안타까운 정의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싸움이 그녀의 싸움이었다.
그녀는 완전히 탈진 상태였음이 틀림없다. 그녀는 법정에서만 싸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숨기기 위해서 그녀는 늘 싸우고 또 싸워왔다. 실제로는 본격적인 후퇴일 뿐인 전진과 은폐된 패배일 뿐인 승리로 점철된 삶이었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유죄였다. 그리고 범죄자를 배반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으므로 내가 유죄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범죄자를 사랑한 까닭에 유죄였다.
*미하엘의 두가지 기억과 과거 그리고 현재의 한나.
한나에게 느끼는 동정과 연민은 미하엘의 스크린에 투사하던 기억에 해당하는 걸까? 그녀에게 동정과 연민이라는 사적인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녀의 행동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고 투쟁이었다는 것은 저장된 파일에 불과하는 기억에 해당되는 것일까? 그녀의 선택이 투정이었다고 하는 것은 과연 감정이 없는 파일의 기억이 맞을까? 이런 연쇄적인 질문의 답은 마지막 부분이 말해준다. 그녀를 사랑해서 자신도 유죄라는.
그녀가 한 선택이 그녀의 개인적인 투쟁이였다고 말하는 건 감정이 없는, 단순히 꺼내보는 기억일 리 없다. 미하엘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한나를 자신의 스크린을 통해 기억한다. 감정을 담은 기억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그의 말대로 그는 그녀를 사랑했으므로, 유죄이므로.
잔인한 범죄 행위에 가담한 그녀. 그걸 모르고 그녀를 사랑했던 것 그리고 그런 그녀를 여전히 사랑하는 것.
거칠고 투박하지만 매력 넘치던 한나, 법정에서 자신의 정체가 밝혀질까 두려워하는 한나. 모두 같은 한나다. 결국 모든 게 한나다.
미하엘은 계속해서 그녀를 '본다'. 그는 그녀를 사랑한 관찰자이자 결코 동참하지는 않는 방관자다. 그의 시선은 사랑에서 출발해서 이별을 겪고, 재회의 순간엔 충격까지 경험하는 데에 다다른다. 꽤나 순탄치 못한 사랑이건만, 미하엘은 "유죄인 그녀를 사랑해서 자신도 유죄"라고 한다. 같은 죄인은 같은 책임을 떠맡는다. 너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하는 동시에 그 죄를 함께 짊어간다. 행동하지 않았음에도 행동의 반성을 대신하고 반복한다. 그럼으로써 끔찍한 죄악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함께 반성하는 것이다.
남녀간의 사랑으로 그려진 이 이야기는 전쟁을 일궈내고 겪고, 가담한 1세대들을 추체험하는 2세대(68세대)의 이야기이다. 미하엘이란 존재는 기존 68세대와 달리, 1세대만이 가해자라는 판단에서 벗어나서 그들에게 일방적인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이러한 미하엘의 접근 방식(사랑)은 분명 불편하고 껄끄러운 이야기를 다시 하게끔 만드는 시도다. 범죄자를 사랑했고 사랑하는 것은 죄악에 대해 남아있던 경계선을 허무는 것과도 같으니까. 심지어 미하엘은 자신이 경험하지도 않은 시대와 사건, 범죄를 '기억'한다. 이 부분에서 한나가 미하엘보다 매우 연상이란 설정이 꽤나 고의적인 설정임을 알 수 있다.
경험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가? 논리의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하엘은 기억의 전이를 통해서 그녀를 바라보고 사랑한다. 여기서 <전이>란 트라우마의 후유증이 세대를 넘어 적용되는 것으로, 직접 겪지 않았음에도 추체험하며 기억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참 미련맞다 싶은 미하엘의 사랑은 글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묻는다. 한나가 범죄자인 것은 당연한 '사실'이나 그것에 대해 힐난, 혹은 비판'만' 하는 것이 마땅한가? 라고. 그들만의 잘못이라고 과거를 결론지어버리는 것은 은폐이자 침묵이며 결코 마감되지 않을 완결이다. <Der Vorleser>는 미하엘의 시선을 통해 양심에 대해 고민도 필요 없었던 세대들이 행하는 무지에 대한 불쾌, 스스로에 대한 미화를 변태적이라고 말한다. 68세대들이 행하는 비판의 정당성은 과연 어디에서 오며 누가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했는가?
보는 것, 기억하는 것. 어찌보면 행동의 적극성에 있어서 한참 미달인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 깊은 속에 고요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감히 약하다고 평가절하할 수 없다. 그럴수도 없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모든 걸 바꾸고, 누군가를 깨우치고, 누군가를 구할 수 없기에. 시간을 꺾은 구원은 오히려 가만히 보는 것과 기억하는 것 보다 더 힘이 없기에. 이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보는 것이고, 그녀를 기억하는 것이고, 그녀 대신 책을 읽어주는 것이기에.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보고, 기억한다. 내가 겪지 않았음에도…….
초반 미하엘은 한나에게 빠져들며 점점 마비의 상태로 빠져든다. 그리고 그러한 마비는 사랑의 추억에서 범죄자로서 법정에 회부된 그녀를 봤을 때 또 한번 작용한다. 마비. 무감각의 상태. 오히려 높은 경계성이 짝꿍으로 붙는다. 그리고 그런 경계는 작가 스스로가 포함된 2세대들까지 경계한다. 이러한 경계는 그들이 자신들이 선정한 선에서 완결을 냈던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 내는 행동으로, 이는 침묵하지 않겠다는 선포와도 같다. 방관자, 침묵하는 자, 은폐하는 자, 비판만 하는 자가 아닌 그들의 과오도 나의 것으로 동일시하겠다는 무모한 용기다. 당시 가해자가 아닌 2세대들이라고 해도 행동하는 것, 선택하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라고 되려 묻는 역전이다.
작품은 오로지 미하엘의 시선과 그의 생각으로 흘러간다. 그가 한나에게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적인 부분을 이야기함으로서 과거의 범죄와 연결된 1세대를 이해해보려는 마음을 보여준다. 사실 미하엘의 이런 추체험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몸부림으로 시작한다. 그는 과거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어 절망적이지만 여전히 탈출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사랑은 그것을 결코 쉽게 청산하려고만 하지 않는 끈질김이다. 여기서 또 한번 청산의 의미에 대한 의문점이 수면위로 떠오른다. <게걸음으로>에서도 나오는 완결성에 대한 의문. 그리고 그것에 대해 끝도 없이 연쇄되는 질문들.
+물론 미하엘(2세대)의 따뜻한 시선을 두고 가해자와 범죄를 미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일축도 세게 일었다. 그러나 '사랑'은 그들을 이해하고 함께 과거를 짊어감으로써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목적으로 두고 있다. 잘했다고 독려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그들을 까발리고, 법정에서 차가운 눈으로 보면서도 책임을 전가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부모 세대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함께 기존 방식에 대한 반성을 함께 하는 의미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더이상 침묵을 강요받지 않을 수 있게 늦게라도 해결책을 열려는 시도다.
*Banalität des Bösen
*악의 평범성_한나 아렌트
유일한 악적인 존재만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히틀러, 아이히만과 더불어 한나 또한 끔찍한 범죄자이지만 그들은 결코 절대 악이 아니다. 그들도 상황과 조건에 따라 변하는 같은 인간일 뿐이다. 악적인 존재라고 단정짓는 것은 어찌보면 추앙과도 같다. 특별하고 유일한 악마는 없다. '같은 인간' '인간으로서 바라보기' 역시 <게걸음으로>와 맞닿는 부분이다. 그들에게 세계사에 다신 없을 악마의 이미지를 부여하는 순간 본질은 잊혀진다. 우리가 읽는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는 단어들, 제목들 역시 경계해야한다. 누구든지 히틀러가, 아이히만이, 한나가 될 수 있다.
iconic-아이코닉한 인물. 유일성이라는 힘을 가진 인물. 그 유일성이 무한한 인원을 다 감싸고 돌만큼의 카리스마를 지녔을 거라고 믿는 애석한 맹신. 이 모든 과정은 세기전의 종교로부터, 나치와 히틀러로부터, 현재와 미래의 모든 유일한 구원자로부터 여전히 발발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도 경계하는 인간이여야한다. 어떠한 사건이 나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더라도, 나만큼은 가해자 선상에 서지 않을 거란, 절대적으로 예외일 가능성을 믿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성찰과 반성은 무능하고 무지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고 반성이다. 더불어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예방이다. 이러한 담론은 인간 '자체'를 분석하는 시도이자 여기서 독일인 / 유대인 혹은 가해자 / 피해자의 구분은 없어진다. 인간 본질에 대한 열정적은 집중은 끝까지 잊지 않고, 그것을 놓지 않으며 계속해서 반복되어야 한다. 그것이 결코 나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나와도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와 절대 마주칠 일 없을 것 같은 그 악마도 결국엔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너만의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Hanna
1. Mama
한나는 나이차가 많은 미하엘에게 엄마와도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나를 보살쳐주고 나를 구해준 그녀. 그녀가 미하엘.에게 해준 행동은 마치 모성애에서 비롯된 것과 같은 모습들이 많다.
2. 거부할 수 없는 마성-사랑
미하엘과의 관계에서 절대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는 한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눈을 떼지 못하는' 등의 표현은 유일한 절대자에게 향한 것과도 같다. 외부요소를 차단시켜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하는 능력. 그리고 정말로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느낌. 위압감마저 느껴진다.
3. 변화, 선택, 이별
또래 친구들을 사귀고 건강을 회복한 미하엘. 그는 자신의 이러한 변화 때문에 그녀가 떠났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와 그녀는 헤어지고 한동안 한나를 보지 못한다.
4. 인지
법정에서 전쟁 범죄자의 의자에 앉아있는 한나. 여기서 미하엘은 자신이 범죄자를 사랑했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인정한다. 인정-그녀를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이어지는 사후기억(추체험). 그녀와의 사랑은 인정하지만 점차 차가워지는 미하엘의 시선은 적극적으로 1세대와 공범이 되고 싶지는 않은 2세대의 고뇌와 갈등을 보여준다.
*사후기억(추체험)
세대 간을 넘어 선 전승행위. 동시에 트라우마의 후유증을 세대를 넘어 공명하는 것.
다음 세대가 전세대가 겪은 트라우마적 사건의 고통을 뒤늦게나마 심적, 육체적으로 체험하며 그 사건을 기억하는 것.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닌 과거의 과오 반복 예방을 위한 노력임과 동시에 전 세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담겨있다.
+Mitscherlich 부부
"애도작업을 통해 내면의 싸움 속 대상의 상실과 자아의 고통스러운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상실의 현실로 진입하는 것을 배워야한다."
"기억하기란 사랑하는 대상과의 연결이 계속 조각조각 찢어지고 그로부터 애도하는 자신 안에서 상처와 균열을 체험하는 것이다."
"독일의 전범세대는 나치 과거사를 극복하기 위한 애도작업에서 실패했으며, 모든 잘못을 히틀러 1명에게 전가했으며 서둘러 잊고자만 했다. 이는 독일 과거사와 제대로 된 결말을 맺을 수 없으며 서둘러 침묵하는 것은 기억을 억압하는 것과도 같다."
+참고로 영화에선 이런 내용보단 이성간의 사랑이 훨씬 더 많이 부각된다. 무조건 글로 읽어야하는 작품. 글 안에 본질이 그득그득 담겨 있다. 그럼에도 케이트 윈슬렛의 캐스팅은 완벽. 한나의 이미지와 너무 잘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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