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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o Irrea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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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르와 함께 한 저녁 시간 - 클레르 혹은 안시호수의 소소한 소란> : Wie sie sagen oder verstecken seine Liebe S.179 로메르는 이단아다. 나도 이단아였다. 다른 누군가에게서 이단아의 기질을 보면 정말 좋았다. 우리 사이의 연관성이 뭔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연관성이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중략… 솔직함에는 약간은 어렵고 어색하고 거북한 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로메르의 작품에서 로맨스는 언제나 차갑게 식은 격정으로 표현된다. S.184 어린 뱅상은 딱 봐도 로라를 좋아하는 티가 나는데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말하고, 로라는 곧잘 자신의 감정에 대해 지극히 고상한 어조로 말하고, 또 오로라는 모든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데 한 남자에게 정착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논리로 독신 생활을 정당화한다. "운명이 내 길에 아무 것도 놓아 주려 하지 않으니 아무 것도 잡지 말아야죠. 뭐 하러 운명에 맞서 싸워요?" 하지..
<프로이트의 그늘 아래서, 파트2> : Roma - Berlin S.68-71 프로이트라면 이런 나를 이해했을 것이다. 나는 로마를 갈망하지만, 로마는 왠지 불안감을 일으키고 당혹스러울 만큼 비실재적이라고 말해도 될 만한 감응으로 다가온다. 로마와 관련되어 행복한 기억도 별로 없고, 로마는 내가 로마에서 그 무엇보다 원했던 몇 가지를 한번도 내어 준 적이 없다. 이 몇 가지는 여전히 미숙한 욕망의 유령처럼 사라지지 않고 나 없이, 나도 모르게 로마를 서성거린다. 내가 알아낸 모든 로마는 다음의 로마로 흘러들어가거나 파고 들어갈 뿐 그중 단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50년전 내가 처음으로 본 로마. 내가 버리고 떠난 로마. 수년이 지나 다시 찾았으나 로마는 나를 기다리지 않았고 나는 이미 기회를 놓쳤기에 결국 찾지 못한 로마. 어떤 사람과 방문했다가 그 뒤에 또 다른 ..
<로메르와 함께 한 저녁시간-클로에 혹은 오후의 불안> : Herr. S. 201-202 영화관 밖으로 걸어 나오는 시간이 악몽같았다. 우리에겐 영화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없었다. 3번 애비뉴로 걸어가 작은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 뒤 그녀에게 택시를 잡아주었고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 주 후반에 전화를 걸어 또 영화를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주말에 가야 할 곳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 후 우리는 1년이 지나도록 연락을 하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가 로메르적이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던 이유를 깨닫는 데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 로메로적이려면 잘 모르는 사이나 다름없는 남자와 여자여야한다. 예전에 두어 번 만났거나 둘 다 아는 친구가 몇 명 있었지만 서로 가까워지지도 않았고 가까워지고 싶은 생각도 없던 사이여야 한다. 로메르의 작품이 늘 그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