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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

< 나의 사랑, 이중 거울 >

 

 

E: 대사와 음악 제외한 효과음

N: 나레이션

플래시백: 회상 장면

플래시컷: 화면과 화면 사이에 들어가는 순간적인 장면

 

 





S1. 그 모두가 1인칭의 사랑을 한다는 것

 

 

 

C가 없는 C의 방에서, 조용한 새벽.

AB, 주인 없는 방에 각자 소파에 기대거나 앉아있는, 작은 협탁엔 치즈와 와인을 먹다 남긴, 소파에 길게 엎드려 있는 A, 바닥에 앉아 작은 소파에 기대어 있는 B, 창 밖으론 가끔 오토바이나 자동차 시동 소리가 들리는, 그 이후엔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A 먹다 남은 치즈를 마저 먹으며 입을 여는,

 


A: 사랑이란 뭘까? (E, 치즈를 쩝쩝대며, 사뭇 진지한)

 

B: 갑자기? 너무 새벽 감성적인 질문인데. 주인 없는 방에서 시시콜콜 이야기 할 주제도 못돼. C에 대한 짝사랑 푸념이라도 얘기하고 싶은 거면 넣어둬. (손 사레 치며, 고개를 소파 뒤로 젖히는)

 

A: 그래도 말해봐. 난 요즘 내가 C를 좋아하는 건지 걜 좋아하는 날 좋아하는 건지 분간이 안 돼. 내가 이상한 건지, 내 사랑이 이상한 건지. (E, 한숨 쉬며, 먹던 치즈를 그릇에 던지듯 내려놓는)

 

B: 네 질문도 퍽이나 그렇지만, 사랑 자체는 나한테 굉장히 추상적이야. 딱 하나로 깔끔하게 결론지어지지도 않잖아. (젖혔던 고개 들며, A에게 눈 맞추며) 전 세계 수 억 명은 저마다 각자의 사랑을 하지. 과거부터 미래까지의 사랑은 또 얼마나 많이 변해왔는지 가늠도 안가고. 어려워. 나는 과연 그 사람들처럼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했고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나에게 사랑은 무엇일까? (고개 저으며) 당장에도 안 나오는 대답이지만, 수년을 생각한다 해도, 역시 어려워.

 

A: 그 수많은, 전 세계 사람들 각자의 사랑에도 통하는 보편성이 있을 거 아냐. 내 사랑이 유별난가 싶어서 그래. 내 사랑한테는 그 보편성이 안 찾아오는 건가 싶어서.

 

B: 일단 사랑이라는 단어는 사실 나한테 그 글자 생김새부터 연상되는 분위기 이미지, 본질과 의미까지.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어려워. 부담스럽다고도 할 수 있겠다. 모습이 너무 많잖아?! 게다가 변형도 변질도 쉬워.

(자세 고쳐 앉으며, A 쪽으로 엉덩이를 당기는, 손을 들어 모양을 만들어 보이는) 사랑을 입체적인 다각형이라고 한다 치면, 무한대의 각을 가지는 거야. 어느 한 상태로도 머물지 못하고 계속해서 각을 늘여가는 운명을 타고난 거지. 한 사람 당 하나의 다각형을 가져라! 하고 누가 법으로 정해준 것도 아니니 그 수는 무한대 곱하기 무한대가 될 거고. 그런데 그 무한 중 하나인 네 사랑에 왜 보편성이 필요한 건데?!

 

 

A: (손을 모아 고개를 그 사이에 떨구는, 잠시 침묵하는, 진지한) 나는 걔를 보면서 나를 보거든. 나와 비슷해서 좋으면서, 나와 비슷해서 싫어. 또 나와 다른게 좋으면서 싫어. 그 감정들이 싸우는 와중에 그 뒤로 내가 보여. 난 정말 C가 아니라 C에게 나를 비춰서, 걔에게 비춰지는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

 

B: (언성 높인 게 조금 미안한, 누그러진) 그래. 그 다각형의 면에 그려지는 건 사랑하는 대상이잖아. 너한테는 C일거고. 근데 누가 그 면에 그려져 있냐보다는, 그리는 사람이 중요한 거 아냐? 화가의 작품엔 당연히 그 화가도 그려지게 되어 있어. 그 사람이 알지 못해도, 무의식적인 자가 반영을 하는 거지.

 

A: 그려지는 것 보다 그리는 게 중요하다는 건, 사랑받는 것 보다 사랑하는 것에 더 중요하다고 의미를 두는 거야?

 

B: , 단지 어느 한쪽에 우위를 두려는 건 아니야. 단순히 사랑을 주고받고, 객체와 주체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니야. 다만 어찌됐건 그 사랑의 주체는 모두 1인칭이 되는 거잖아. 내가 너를 사랑하면 나의 사랑이, 신이 우리를 사랑하면 신의 사랑이. 나도 신도 결국 사랑을 하는 1인칭이라는 점에선 같다는 거지. 이건 그냥 예 일뿐이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딱 1인칭. ''라는 그 말 자체야. 신도 신에게는 스스로가 나 일거 아니야. 그 사랑에, 모두 자신을 비추는 거야. 신은 인간이 신의 모습을 하기를 바라면서 인간을 창조했고, 너는 C에게 있는 네 모습을 발견하고 찾는 거고. 사랑받는 그게 누구든 무엇이 됐든,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거야. 그게 누구에게는 왜곡이라고 폄하될지언정, 그건 그 사람의 판단에 불과해. 네가 사랑을 하면서 너를 보는 게 이상한 게 아니야.

 

A: 근데 사실 사랑하면서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잖아. 그건 너무 낭만대서사시야. 한없이 낭만적인데, 그만큼 현실이 아닌 걸 깨닫게 되면 더 우울해지는 거 알아?

 

B: 알지. 내가 너한테도 말했을 걸. 내가 좋아하는 대사가 있어.

 

(N, 담담한, 진지한) 고통과 원망, 아픔과 절망과 슬픔과 불행도 주겠지. (한 템포 쉬고 다시 N) 그리고, 그것들을 이길 힘도 더불어 주겠지. 그 정도는 돼야, 사랑이지.

 

사랑은 그래. 진짜 끝이 없을 정도로 행복하고 희망적이다가, 이렇게 우울하고 절망적일수도 비참할 수도 없는 데까지 끌고 가서 감정을 처박아버리지. 근데 단순히 이런 감정만이 사랑을 지배하는 모든 원리로 설명하는 건 위험해. 그건 그냥,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히스테리로밖에 보이지 않을 때가 꽤 많다는 걸 염려해야 돼. 우리 예전에 대학교 때 배웠던 것들 기억나? 베르테르랑, 아셴바하랑, 싱클레어와 데미안. 그 남자들, 다 행복해하면서도 절망하잖아.

 

(플래시백, 강의실 맨 앞, 주루룩 앉아있는 A, B, C)

 

넌 그들이 뭘 사랑했다고 생각하니?

 

A: 로테와, 타치오와, 데미안? 잠깐. 데미안이 뭘 사랑했는지는 어려운데. 일단 이 세 네명이 뭘 사랑했냐는 말은, 답이 같다는 말이야?

 

B: 적어도 난 그래. 넌 사랑을 하는 사람으로서, 너는 또다른 베르테르고, 아셴바하고, 싱클레어이고 데미안이야. 사랑을 하면서 자신을 보니까. 나는 그들이 사랑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봤다고 생각해. 그냥 자기 자신의 외형적인 걸 본 게 아니라, 사랑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원하는 걸 본거야.

 

사랑받았던 로테, 타치오, 데미안에 대한 그들의 감정은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너무 잘 알았었지. 근데 아까 말했듯이 감정이 사랑의 전부가 될 순 없잖아. 조금 더 냉정하게 얘기해볼까? 그 중요한 사랑대서사의 남자주인공들의 감정은 진짜가 맞아. 근데 결론적으로 난 그들의 시야가 로테를, 타치오를, 데미안과 에바 부인을 넘어선 어떠한 지점에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해. 아니, 머무르는 게 아니라 그곳으로 갈려고 미치도록 애를 쓰는 거지. 사랑받은 그들은 사실 사랑하는 자들에게 넘어야 할 계단과도 같아. 그들을 누르고 그 지점으로 뛰어넘어야 하거든. 그리고 그 지점엔 바로 베르테르, 아셴바하, 싱클레어의 욕망이 자리 잡고 있던 거야.


난 그 욕망이 감정을 무조건적으로 배제한
, 아주 차갑고 날 선 이성이라고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구분 짓고 싶진 않아. 감정은 그 욕망으로 다가가기 위한, 다가가게 나를 밀어주는 기본 시스템이자 원동력인 거야. (우뚝 일어서서, 양손을 쫙 뻗으며, 목소릴 높이며) 그 욕망들? , 내가 여기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너는 나에게로 오라! 하고 팔을 뻗고 있을 걸. 그토록 힘겨웠던 로테를, 타치오를, 에바를 통해서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고 그 곳으로 왔느니라! 하고. 신 같이 말하면서. (담담한, 어깨를 들썩거려보이는)

 

A: (감탄하는) 너 생각보다 괜찮은 애다.

 

B: (치즈 던지는 시늉하는) 그걸 지금 알았어? 여튼 네가 C를 좋아하는 지금도, 앞으로 사람이 아닌 어떤 행동이나 물건을 사랑한다 해도 잊지 마. 넌 그 사랑을 통해 너를 보는 게 맞고 그건 당연한 거야. C 그 애 자체보단, 그 애와 함께 할 너를 상상하며 기쁘잖아. 근데 웃기지 않아? 나와 달라서 이 사람에게 끌려, 하는 사람도 있을 거 아니야. 생각해보니 아셴바하는 완전 그 쪽이네.

타치오를 물리적으로 건드리지도 않고 그 애와 함께 할 미래를 감히 상상조차 못하고. 너와 반대야.


근데 그런 그도 너처럼 자신을 봐
. 젊고 존재 자체로 찬란한 타치오와, 명성과 명예를 얻었지만 늙어버린 자신이 완전히 다른 줄 알았는데, 결국 이중 거울처럼 타치오를 향한 사랑 그 너머로 자신의 모습이, 욕망이 비춰지고 있었던 거지. 완벽한 예술인 타치오를 보면서, 사랑하면서 자신도 완벽해지고 싶다는 그 욕망을 죽음으로서 맞이한 거지. 그에겐 타치오는 자기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존재잖아. 그 존재의 의의는 아셴바하의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그 기준에서 나와. 아까 말했던 1인칭의 사랑, 그거지.

 

A: 그럼 작가들이 글에 자전적 모티브를 넣는 것도 결국엔 자신을 사랑해서겠네? 그렇게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도 많은데. 그 비극도 결국 사랑에서부터 온 거라고 생각해?



B:
마찬가지지. 작가들의 작품을 여러 개 읽다보면 분명 중복되는 키워드들이나 모습들이 나오잖아. 일부러 의도해서 넣는 경우도 많겠지만, 그건 글에 자연스럽게 그들 자신의 모습이 나오는 거야. 그들은 절망적인 현실의 삶 속에서 죽을힘을 다해서 글을 썼겠지. 그 글은 결국 그 절망을 이기는 힘인 게 아닐까?


나는 나를 사랑하는데
, 나는 이렇게 불행해. 그래서 그 불행을 이길 힘으로 글을 써. 그 글엔 내가 담겨 있어. 나는 나를 사랑하거든. 그렇게, 계속 순환 하는 거야. 정말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글이란 걸 안 썼겠지. 혹은 비관적인 자살을 했거나. 물론 베르테르의 자살은 예외적이라고 해두자. 아셴바하도 마찬가지고. 그들은 모두 글을 썼어. 로테를, 타치오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자신의 사랑과 욕망을 사랑하니까. 스스로를 로테와 타치오만큼, 혹은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은 글을 쓰고, 죽음을 택한 거야.

 

A: 근데 집에만 있으니까 좀 덥다. 우리 밖에 나가서 좀 걸을까?

 

 




S2. 거울, 싱클레어, 데미안.

 


새벽
, 도로, 어두운 남색 하늘, 인적 드문.

AB, 좁은 도로에 같이 걷다, 심야에도 여는 동네 펍으로 들어가는, 역시나 손님 없는, 졸고 있는 직원, 간단한 메뉴만 시켜 자리에 앉는

 

 

 

A: 우리 아까 데미안 얘기도 했었잖아. 너 그때 싱클레어가 사랑한 게 데미안이라고 했지?

 

B: . 작품에선 베아트리체와 에바 부인이 나오지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더 사랑하는 느낌을 받았어. 아주 단순한 내 감각이, 그렇게 작품을 읽었어. 몇 번이고 읽었는데도 베아트리체가, 에바 부인이 데미안 같았어.

 

A: (먹던 콜라를 내려놓으며, E, 탁 소리 나는) 근데 사실 나도 그래! 내가 아까 얘기할 때, 나와 달라서 사랑을 하게 되었어요, 하는 인물들은 베르테르와 아셴바하였잖아. 근데 싱클레어는 달라. 그는 단순히 데미안이 자신과 달라서 끌렸다기 보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과 데미안의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해서야. 사실 그건 내 이야기의 결론이니까 처음부터 다시 얘기해보자.


B: 싱클레어가 자신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문을 열어준 사람도
, 그가 목표점을 향해 알을 깨서 통과하는 통로도 데미안이잖아. 그는 자신의 얘기를 할 때부터 데미안을 언급해. 끝없이 기존의 아버지의 세계에 있을 때도, 새로운 죄악의 세계에 있을 때에도, 방황하고 혼란할 때도,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생겼을 때도. 언제나 데미안을 생각하지. 사실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끼친 영향은 뭐 너무나 잘 드러나 있어서 누구나 알 수 있어. 무의식적으로 그는 항상 데미안을 사랑한 거야. 안고 싶고 만지고 싶은, 내 곁에만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보통의 사랑보다는, 고대 지식인들이 한 그 사랑, 지혜에 대한 사랑에 가깝지. 정신의 사랑. 내가 가야할 정신의, 그런 어렵고 혼란스러운 길이 있어. 그 길목을 틔어 준 사람이 있는데, 난 중간에 그를 잃어버렸어. 근데 그 길 끝에도 그가 있는 거 같아. 어렴풋한 형상으로 날 지켜보고 있을 것 같은 사람. 싱클레어한텐 그게 데미안이고, 그 과정이 대체 사랑이 아니고 뭐야?

 

난 개인적으로 베르테르와 아셴바하가 로테와 타치오를 보면서 그들의 정신을 담은 사랑이, 감각적인 감정을 합쳤다고 봐. 아셴바하는 예술, 그 아름다움에 대해 정신적인 면모를 노력 하며 살아왔지만 타치오를 보고 감각이 차지하는 부분도 인정하게 됐지. 베르테르는 알베르트만큼 이성적인 사람이었지만 로테를 보며 폭발적인 감정을 얘기하는 사람이 됐고. 근데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계기로, 그를 통해서 자신을 깨닫는 과정이 곧 사랑이 된 거야. 자주 만나지도, 엄청나게 많은 대화를 하지도 않았지만 데미안은 항상 싱클레어의 삶에 포함되어 있잖아. 싱클레어가 알을 깨고 새가 되어 날아갔다는 건 결론이야. 데미안의 영향력은 그 과정 중에 은연하게 깔려있어.

 

A: 그렇다면 감각은? 정신적인 사랑이 데미안이라면, 싱클레어는 한 번도 감각하는 사랑을 하지 않았단 거야?

 

B: 단 한 번도는 아니지. 먼저 에바트리체 얘기를 하자면, 그녀는 데미안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한다고 생각하게 된 하나의 계기에 불과해. 왜냐고? 싱클레어는 에바트리체를 사랑한다면서 그녀의 얼굴을 그렸어. 그리고 계속해서 이상하고 불안한 느낌을 받다가 그 얼굴이 데미안이라는 걸 깨닫지. 그리고 그게 자꾸 자기 얼굴인 것만 같다고 생각해. 나는 이 부분이 사실 싱클레어의 모든 성장의 과정을 보여준다고 보거든? 왜냐면 에바트리체는 단순한 지각, 외부적인 감각과 자극의 동기야. 하지만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깊게 생각하게 해. 그리고 싱클레어의 대부분의 생각들은 데미안과의 대화를 그리워하지. 그리고 결국 후에 나오는 피스토리우스에게서도 데미안 같은 면모의 부재를 느끼는 것도 같은 맥락이야. 어느 정도까지의 사유를 하게 하지만, 데미안이 행사할 수 있는 그 깊음까지는 부족했던 거야.

 

A: 그럼 아까 너가 말한 이중 거울은 싱클레어와 데미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다는 거야?

 

B: 아니. 모든 사랑은 이중거울이야. 싱클레어와 데미안이라고 다를 거 없어. 그래서 더 들어봐야 해.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처음엔 두 세계를 벗어나게 하는 자이자, ‘데미안이라는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로 인도하는 자이자, 싱클레어 혼자만의 세계로 그를 떠미는 자야. 마지막 단계에서 데미안은 없고, 싱클레어 혼자 있지. 그제 서야 그는 오롯이 스스로, 자신이 된 거야에바 부인 얘기도 해볼까? 에바 부인은 데미안이랑 굉장히 비슷한 부분이 많지? 이건 내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난 에바 부인도 데미안이라고 봐. 나이가 더 든, 여자 버전의 데미안일 뿐이야. 싱클레어는 에바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그 사랑은 오히려 감각과 정신의 합체, 베르테르와 아셴바하의 사랑과도 같아 보여.

하지만 정신적인 사랑이 더 강해. 에바 부인을 통해서도 싱클레어는 자신 스스로에게 더 가까워지고 있잖아. 데미안을, 에바 부인이라는 지점을 누르고 그 최종 목적지로 튕겨져 날아가는 싱클레어, 그라는 1인칭의 사랑은 성장이라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욕망이 아닐까? 카메라 초점이 있다고 생각해봐. 다각형에 그려지는 게 에바 부인과 데미안이 돼. 그리고 카메라가 워킹하면서 결국 다각형에 사랑을 그리는 화가 싱클레어를 비추면서 그 장면에서 엔딩인 거지.

 

A: 그럼 베르테르도, 아셴바하도, 싱클레어도 모두 정말 1인칭의 사랑과 스스로의 욕망과 자신의 모습에 다다른 거네?

 

B: 적어도 내 이야기에서 그 남자들은 그래. 사랑을 받는 자 보다는 사랑하는 자로서, 오로지 그들만의 시점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바라보고, 그 시점의 종착지는 결국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다는 게 내 이야기의 결말이야. (콜라를 다시 마시는, 김빠진, 인상 찌뿌리는, E, 내려놓는)

 

A: 사실 데미안은 데미안이란 인물의 이야기일줄 알았는데, 싱클레어여서 놀랐던 게 너랑 얘기하니까 좀 내려가는 느낌이야. 분명 나는 싱클레어의 삶을 봤는데 데미안도 본 거 같아서.

 

B: 싱클레어가 데미안이 되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는 그냥 더 높은 차원의 싱클레어가 된 거야. 다만 그 과정에서 데미안이 그의 거울이니까 제목도 데미안인 거 아닐까? 그럼 데미안이 누구를 사랑했느냐도 똑같지 않을까? 데미안의 거울도, 사랑도 분명히 있을 거야. 에바 부인이 더 큰 데미안이니까 그녀도 그에게 영향력을 끼쳤겠지? 데미안도 데미안을 사랑했을 거라고 믿어. 그도 1인칭이 되고, 사랑을 하고, 자신에게 다가갔을 거라고. (이상한) 근데 너 어디 봐? (A가 쳐다보는 창 밖으로 몸 돌리는, 놀라는)

 

 

 


 

 

 

S3. 내가, 사랑하는 C

 

 

(E, 문에 달린 종이 울리는, 졸던 종업원이 놀라는, C는 지나쳐 B앞에 앉는)

 

 

 

A: (놀라는, 주춤하는, 말 더듬는) 너 내일 온다고 하지 않았어?

 

C: (담담한, 감자칩 하나 베어 먹는, 내려놓는) 그냥 새벽 비행기로 왔어. 너 우리 집에서 잔다더니? 잠겨 있길래 혹시나 하고 와봤지. 혼자서 궁상맞게 여기서 뭐해? 새벽 5시야. (일어서는, A의 가방 챙기는)

 

A: 아니, 나 지금까지 B.

 

C: (놀라는, 이상한, 웃는) B? 지금까지 귀신이랑 영혼의 대화를 한 건 아니지? 빨리 집에 가자. 뭐라도 시켜먹자. 여기는 진짜 항상 맛없어. (웃는, 먼저 나가는)

 

A: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이중거울. B. (따라 나가는, 한 번 더 뒤 돌아 보지만 텅 빈, 고개 갸우뚱하는, 웃는, 조금 설레는)

 

 

 

닫힌 문으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