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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은 없었고 악녀만이 남아 소비된다

악인은 없었고 악녀만이 남아 소비된다

 

 

2020. 10. 06 작성

 

 

 그리스 로마신화의 유명한 악녀들 메데이아와 페드르. 악한 여인으로 불리는 그녀들. 그녀들이 행했던 처사에는 분명 보다 복잡한 배경과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유일한 결론은 악한 여자만이 있을 뿐이다. 그녀들은 악한 인간이 아닌 악한 여자로 불린다. 그녀들이 만일 영웅이었다면 여자 영웅이었을 테고, 마블에 나오는 빌런이었다면 여자 빌런이었을 테지. 

참 이처럼 뻔하고 쉬운 도식일 수도 없다.

 

 

1. 메데이아

메데이아는 이아손의 남성 중심 영웅 서사에서 조력자임과 동시에 아내의 역할을 다 해낸 후 그에게 배신을 당한다. 그녀는 그를 위해 조국을 배신하고, 형제를 죽이고, 부모에게 쫓김을 당해 또 다른 이방으로 떠나왔다. 모든 걸 포기하게 만든 남자. 그만큼 사랑하는 남자. 그 남자는 어느 순간에 그녀와 그녀의 희생을 져버리고 새로운 여자와 결혼하겠다며, 덧붙여 그 결혼을 합리화시키는 허무맹랑한 말들을 내뱉는다. 그녀는 그의 배신에 맞서 오로지 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 자신의 아이들을 죽일 결심을 한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미의 마음을 넘어서까지 그에게 고통을 주고 싶기 때문에. 참으로 애절한 절망이고 분노다. 사실 그녀는 고향을 떠났지만 맘 속 한 켠에선 그곳을 그리워했고, 자녀들을 죽이려 맘 먹었음에도 여전히 고뇌하고 고통스러워 했다. 그녀의 희생, 고통, 사랑, 이별은 오랜 시간을 견뎠는데 그러한 인내는 결국 벼랑 끝에서 밀려 비극으로 치닫는다. 심지어 그 비극의 달리기의 방향을 정한 건 그녀가 아닌 이아손이다-물론 이 달리기는 그녀의 선택이었지만. 자신이 감내할 부분을 인지하고 기껏 달려왔건만, 사실 내가 달렸던 방향을 모두 내 남편이 정한 거였음을 이제 깨달은 여자에게 이제 넌 더 이상 뛸 필요가 없다며 널 버리겠단 말까지 하다니.대체 어떤 인간이 어떻게 절망하지 않을 수 있지? 그녀의 복수는 이토록 필연적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2. 페데르

페데르는 신의 계략에 의해 엇나간 사랑을 한다. 자신이 의붓아들을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어머니가 했던 불륜의 계승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만인이 싫어하는 여자라고 자칭한다. 그러나 그것 모두 신의 의도대로 움직인 것 뿐. 여성, 결혼, 애정을 거부하는 히폴리토스에게 신으로서 존경 받고 싶었던 아프로디테의 계략이었다. 사랑에 유일하게 행사력을 뻗을 것 같은 자유의지도 결국엔 페데르의 것이 아니었다. 신의 농락에 빠진 사람의 사랑. 그것은 악행으로 불렸고 그녀 또한 악녀로 불린다. 계략에 빠진 모든 사람이 또 다른 계략을 만들어 내진 않는다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 그럼 그녀가 순순히, 가만히 당했다면 어땠을까? 이번엔 '불쌍한' 여자가 된다. 이런 형용사적 동정은 단순한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행동을 해도 지독한 꼬리표는 1+1으로. 그녀의 행동에 왜? 라는 질문을 쏟아지지 않는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으니까.

사랑에 빠진 것부터 그녀의 선택이 아니었고, 그녀가 편지를 남겨 히폴리토스가 죽게 되는 결말도 그녀의 계획이 아니었으나, 그래도 그녀는 악녀가 된다. 

 


 

 

그녀들은 결코 다수 중 한 명의 악한 인간으로 불리지 않고, 희대의 악한 여자로서 불린다. 

악의 평범성에 기인한, 그럴 수도 있는 악인-평범하고 일상적인 다수의 악인 중 한명이 아닌 유일한 악녀. 

 

악은 유일한 것이 아니지만 악녀는 유일한 것으로 과장되고 판단된다. 

그녀들의 악행이 자신의 고통을 감내한 선택이었든, 처음부터 끝까지 신의 계략에 의해 움직인 것이든 그런 배경상황은 중요하지 않다. 이아손은 결코 악남이라 불리지 않고, 아내가 있는 이아손에게 자신의 딸을 결혼시키려 한 크레온도 악남 혹은 악인으로 불리지 않기 때문에.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헬라스인이 아니면 야만인이 되고, 그리스 지역에서 멀어질수록 야만성을 짙게 봤다는 것과 같은 방향성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정석. 또한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선 더더욱 남성이 아니라 여성일수록 무지하다는 어떠한 하나의 공식과 더불어 여성들이 어떠한 심리적, 환경적 배경으로 악한 행동을 했는 지에 대한 추적은 부재한다. 

 

고대에 이어 근대, 현대에서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언제나 화두에 오르는 문제다. 나름의 입장들이 서로 할퀴고 싸우는 와중에도 ?’라는 질문은 묻힌다. 잠식한다. 그리고 결국 결론만이 남는다. 그녀들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경험했던 고통과 선택의 문제는 특정 성별의 개인적인 악행으로 치부된다. 신들의 의지 아래에서는 꼼짝없이 정해진 운명을 맞아야 하는 나약한 인간. 그 중에서도 눈에 띄게 똑똑해서는 안되고 제 나름대로의 계획을 펼쳐서도 안되었던 그녀들. 그녀들에게 ?’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반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봐야 한다. 적어도 그녀들은 악녀가 아닌 악인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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