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출구가 필요하다. 이 응집된 억울함을 스트레스 라는 가제를 붙여 어디론가 발산해내야만 한다. 공중에서 사라지게하거나, 어딘가에 던져서 터뜨리거나, 저 멀리로 던져버려 시야에서 없애버리거나. 뭘 해야할까? 어떤 방법이 가장 효율이 좋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최근 들어 효과가 좋았던 것 중에 하나였던 운동을 곧바로 떠올렸다. 복싱, 축구, 런닝, 검도, 수영 등등... 배우고 싶은 운동들이 점차 늘었다. 하지만 다 돈이다. 뭔가를 배우려면 다 돈이다. 어렸을 때 언니와 나가서 공짜 축구를 하지 않았던 탓이려나. 풋살 동호회 마저 돈을 내고 들어가야한단다. 무슨 운동이든 그러하듯, 기본기가 중요할텐데, 기본기를 다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오랜 시간동안 달마다 돈을 내고 배울만할 동기도 딱히 아니기에 일단 제쳐둔다. (*그러나 언젠가 복싱은 배울터이다. 유튜브로 스텝과 팔 뻗기라도 연습해서 복싱장에서 소위 말하는 뺑뺑이로 돈을 헛되이 날리지 않으리라..)
돌고 돌아 답은 결국 글쓰기다. 예전이라면 사진이었겠지만, 신체적인 피로함이 누적되어 어디론가 나가 의도적인 촬영을 할 기운 조차 없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찍는, 내가 사랑하는 사진은 우연히 만나는 순간이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특히나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산물이 아니기에. 나는 결국 글쓰기를 택했다. (*사진만큼 사랑하게 될 게 글쓰기가 되리란 사실도 점차 인식중이기도 하고..)(**어쩌면 작가로 살고 싶은지도 모르겠는 요즘이다. 사진도, 작업도 하는데. 글이 너무 쓰고 싶다. 너무 재밌다 흑흑..)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내가 맡은 업무가 글쓰기의 일종이기도 한데, 그 스트레스를 글쓰기로 풀고자한 히스토리를 써보고자한다. 이 분노 일기장의 <다시시작>을 만들어낸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마케팅 부서의 일원이 되었다. 왜냐? 내가 잘할 거 같아서- 라기보단 나밖에 할 사람이 없어서. 회사가 사람을 굴려서 쓰는 아주 뻔하고 쉬운 루틴이건만, 나라는 일개 개인에게는 너무한 업무분장과 부담일 수 밖에 없잖아. 여하튼 결론 이전의 과정을 설명하자면, 가장 최근에 퇴사한 사람이 마케팅업무를 분담한 사람이었고, 어떠한 결과나 값을 도출해내지 못한 상태로 회사와 좋지 않게 헤어졌다. 나는 내 업무가 아니기도 했고, 그를 개인적으로 불편해하고 맘에 안들어하기도 했고 등의 다양한 이유로 그와 그가 만들어낸 마케팅 결과값을 마땅치 못해했다. '저런 건 나도 하겠다'(*여기서의 나는 마케팅에 관심도 없고 절대 안할 '나'를 뜻한다. 내가 그 업무를 맡게 될줄이야 한치 앞을 모르고..)하면서. 남들 다 하는 이거, 저거 왜 못한대? 팀장급이면서. 라고 하면서 그를 겁나게 씹어댔다. 그런 뒷담은 내 오만이기도 했고, 동시에 그가 업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그가 가진 자신의 예술적 자아가 이 회사의 작은 그릇 안에 담길 수 없다는 스탠스를 1년 내내 꽉 채웠고, 아무도 그를 팀원으로 생각하지 않고 팀워크를 방해하는 요주의 인물로 등극시키기도 했다. 나는 내가 그를 싫어하는 게 나의 유별난 인간관계 취향이 아니었음에 대해 안도했다. 그건 아주 잠시나마의 그의 부재에 관한 아주 짧은 해방감이었을 뿐. 그것이 나에게로 돌아와 나의 책임이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당황했다. 나는 당황하면 놀라고, 놀라면 화가 난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해 내가 책임을 져야한다거나 컨트롤을 해야한다는 그 부담감과 나를 짓누르는 무게감에 분노한다. 그나마 예술적이었고, 너무 예술적이어서 이 회사가 떠나보낸 그의 공석을 내가 채워야한단다. 왜냐? 그나마 예술적인 인간이 나라서란다. 그래. 무슨 말인지는 이해한다. 나도 알겠어. 나 말고 아트적인 업무를 할 사람이 없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내가 이 업무의 적임자라는 건 아니잖아. 억울함이 쌓이기 시작한다. 심지어 그는 인수인계할 작업조차 없이 본인만의 세계를 맘껏 퍼뜨리고 멋대로 브랜딩해놨기에, 내가 그걸 한꺼번에 바꿀 힘은 더더욱 없었고 오히려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못한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솔직하게 말했다. 못한다고, 하기 싫다고. 하기 싫으면 나는 더 못한다고. 누구에게나 통하는 말이고 업무적으로 회피하고 비겁한 말일수도 있지만, 그것이 나의 진실이었다. 나의 진실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다독여졌다. 할 수 있다고. 어려운 일도 아니고, 너만의 취향으로 너가 충분히 새롭게 일궈낼 수 있다고.
나는 나를 아는 인간이다. 내가 뭘 잘하고, 뭘 못하고, 뭘 어디까지 잘해낼 수 있는지 안다. 물론 MD 업무를 맡을 때의 패기는 조금 예외적이긴하나, 그것은 내가 '회사'라는 집단에서 정식적인 회사원으로 있으면서 무언가를 배워내는 데에 개척점이 될 타이밍의 발단이었기에 이 전의 전제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숫자와 효율, 매출을 다루는 MD도 다양한 분야가 있고, 나는 원체 숫자와는 딱히 인연이 있는 기질도 아니었기에 내가 하는 것은 바잉 MD 업무로 좁혀져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숫자에 관해 완전히 무지하는 않기에, 내 인생에 내가 직접 만질 일이 없고 무섭기만한 엑셀도, 천만원단위, 억단위의 숫자들도 생각보다 괜찮아서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했다. VMD는 사수없이 내가 이 회사에 어필할 수 있는 유일한 강점이었고, 자타공인 나의 분야였기에, 이 두 분야를 가져가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나를 대견하게 생각해왔는데. 이제와서 마케팅까지 하라고?
앞서 말했듯, 나는 나를 아는 인간이다. 호기롭게 시작한 개인 사업을 무한 일시정지 해놓은 이유도 마케팅때문인데. 그걸 못하겠고 못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진의 영역과 돈을 합친 그 용기도 다 정지시켜놨는데. 이제 그게 내 주업무라고? 근데 나는 어찌됐건 이 회사에서 돈을 받고 일하는 인간이기에 하라면 해야 했다. 그게 맞다. 하라면 해야지, 까라면 까야지. 근데 하기 싫다. 이 뒤의 진실이 꼬리표가 되어, 9월과 10월 2달간 나를 엄청난 자괴감으로 쳐넣었다. 나는 나름 이 회사에서 1년동안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팀장님 1명을 제외하고의 유일한 히어로나 마찬가지였는데 갑자기 이도 저도 못하는 금쪽이가 됐다. 성공적인 마케팅의 모습은 결코 예술적일 수 없다. 처음은 무조건 '어그로'다. 싼마이고 짜치고 이런 모든 단어를 동원해 욕할 수 있는 요소를 집어넣어도, 그게 돈이 되고 매출이 되면 성공인 것이다. 그 정도의 쉽고 대중적인 이미지는 아니어도, 적당히 대중적이어야하며, 그동안 이 회사가 나름대로 1년동안 해놓은 것을 망치지 않아야하며, 대표의 이랬다 저랬다 말이 바뀌는 변덕적인 취향도 고려해야하며, 거기에 나의 개성까지 넣은 마케팅을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데?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나의 마케팅 성과나 작업물이 성공적인 것도 아니란 게 열받는 포인트긴하다. 보통 이런 히스토리는 뭐라도 해결되고 나서나 어느 경지에 이르렀을 때 '그땐 그랬지~' 하는 반성과 회상일 터인데. 9-10월간 말그대로 내 뺨만 안때렸을 뿐이지, 친구들에게 힘들다고 징징거리면서 동시에 뺨 맞는 것과 같은 자아성찰을 하고 정신을 차린 결과..아주 조금 나아진 상태. 그러나 거기에 1년동안 모든 팀원을 백업해줬던 잡무가 더 늘어났고, 거기에 마케팅 업무 디벨롭 + 새로 익숙해여져야하는 업무 + 새로운 업무에 대한 팀장들의 부가적인 배경설명 부재로 완전히 폭발하고 말았다. 적어도 일하면서 이렇게까지 신체, 정신적 그리고 감정적으로까지 한계치를 넘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게 어른의 삶인가? 이게 보통 회사원들이 겪는 삶인가? 이럴수록 나는 회사원이 안맞아 라고 아무것도 모르고 외치고 다녔던 젊은 내가 또 맞게 되는데. 세상과 타협보지 않고 때묻지 않고 철없었던 내가 맞을 수 밖에 없는데.
그래도 이 힘든 과정에서도 배우는 게 응당 있을거라 믿는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쓴 일기와 다짐도 힘들면 힘든대로 다 받아내자는 내용이었으니. 지금이 왜 힘든지보다는, 그냥 힘드니까 힘들어하는 게 맞다. 그냥 내가 더 강해지고 남의 돈으로 이것 저것 배워보며 치사하고 억울한것들을 어떻게 감당해내는지 까지 배운다고 생각하련다. 결국엔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에도 그래야겠다. 착하고 칭찬받고 일 잘하는 나로만 있으려고 해서 이 모든 스트레스를 받으려 했으니. 이제는 처음과는 확실히 달라졌네, 바뀌었네, 등의 여러 판단과 비평이 들려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련다. 이 모든 상황은 결국 나에게 언젠간 다시 나갈 것이라는 무기한의 계획을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말라는 마지막 경고가 되었다. 그냥 하고, 잘하고, 못하면 못하고. 내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을 내 포트폴리오로 쌓으면서 실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공부해야지. 독일이건 오스트리아건 내 생활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여건을 이것들을 배경삼아 만들어놓고, 그 언젠가 찐 30살이 되기전에. 가장 쉬운 비자로 한번 더 갈 수 있을 때 가야겠어! 이 스트레스에서 도망치는 건 아니지만, 졸업 후 이제까지 현실에 안주해서 살았던 기간도 꽤나 되니까. 물론이지 이 사람들과 이 회사가 나의 모든 과거와 앞으로의 직장생활에서 가장 베스트 환경일 거란건 맞다. 하지만 안주할만큼 안정적인 것도 아니거니와, 내가 아닌 내가 어떠한 캐릭터로 글을 쓰는 업무를 할 때. 적어도 아주 작고 얇은 영혼 한 조각이라도 남아야하지 않을까.
나는 나이고 싶은 인간인데, 돈을 못벌어도 좋으니 나로 사려는 인간인데. 그런 내가 월급을 받는 회사원으로 살고자 어떠한 캐릭터를 빙자해 텅빈 눈과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손가락으로, 맘에 와닿지 않는 글을 써야하나. 그러나 나는 그런 자괴감에서도 익숙함과 균형을 찾을테지. 모든 것에 온전히 나일 필요는 없다. 그럴 수도 없거니와, 그래야하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좋아만 할 수 있으려면 영원한 소비자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무언가를 일궈냈다고 자랑스러워 할 자격 조차 없는 것 처럼 느껴지는 요즈음. 남들은 다 잘하고 있다는데 아무래도 영 파이다. 진심도 없고 진실도 없어서 아닐까. 매출을 위해 만들어내는 컨텐츠에 뭐 얼마만큼의 진실이 필요한걸까,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나는 앞으로 이 업무를 맡는 동안 더 계속해서 영혼없는 단어와 느낌표를 나열하며 더 잘해낼 게 분명하다.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자 나의 긍정적인 업무 발전이다.
그냥 내가 느낀 건, 나란 인간은 참 하기 싫은 건 죽어도 안하는 인간이구나 싶은거지.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라서 우울하다는 나의 2030 지인들에 비해 나는 오히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인간인데, 동시에 지 하기 싫은 건 죽어도 안하려고 하고 하기 싫다고 뻗대고, 그래서 더 못해내는 인간이라는 거. 그게 나란 인간의 모습 중 하나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 요즘이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돈과 자본주의 사회의 어떤 면으로 부속시키기 싫다기 보다는, 내 의지가 아닌 회사라던가, 업무라던가 어찌됐던 자본주의 사회의 시스템적인 면의 일부 과정으로서 무언가를 창작하는 게 싫은 거다. 나는 예술가도 아니고 예술을 그저 향유하는 소비자에 불과할 뿐인데도, 그런 알량한 자존심을 부린다. 자존심을 조금 내려놓고 하라는 대로 하니 몸과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기억해야한다. 나만큼은. 그 태도를 오래 가져갈 수록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내 스스로 놓아주어야 할 때가 빠르게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놓고 싶지 않은데, 왜인지 그래야만 할 것 같고 더이상 내가 사랑하는 면이 없는 것 같은 그런 착각과 혼란이 올 것이다.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해야할 지 진지하게 논의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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