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기 1분 전. 버스를 타고 가고 싶었지만 10분을 기다려야 한단다. 원래 같으면 당연히 기다렸다가 탔겠지만, 춥지 않아서 나답지 않게(?) 걷기로 한다. 서울 시내가 아니라 조용한 건지, 다같이 묵념을 하느라 고요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고요하고 까만 00시 1분 전. 뒤집어 쓴 후드 위에 두툼한 헤드폰 쿠션 사이로 흘러나오는 윤상의 2집, 샛노란 앨범커버를 뚫고 나와 알알이 박히는 가사의 음절들. 가사가 좋으면 응당 멜로디까지 좋아지기 마련이다. 작년과 새해, 지나간 것과 새로운 것을 나누는 1분이라는 찰나.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갔다고 해서 ‘어른’이 된 건 아니지만 남들이 모두 나보고 어른이라고, 책임지며 살아야한다며 뜬 구름같은 소릴 듣는 것과 같은 순간. 12월 겨울의 한파는 없다. 그들의 모든 모습을 되찾을 때까지는 이 애매한 겨울의 온기가 조금 남아있었으면 한다.
집 앞에 다 와간다. 의미도 모르고 내뱉는 욕짓거리를 하며 새해를 맞는 미성년자들이 하나같이 검은 점퍼를 입고 옹기종기 모여있다. 춥지도 않은 겨울에 털옷을 입힌 강아지와 산책하는 부부들도 있다. 집에 다 와가며 메모장에 이 글자들을 적는 순간 또 깨닫는다. 단순하고 솔직한 글은 이토록 좋은 거구나. 현란한 형용사를 붙여가며 써대는 글을 지양해야한다. 사진을 찍는 것 처럼 그 찰나의 경험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적어야 한다. 온전한 상태는 언제나 휘발되기 마련이니까. 허겁지겁 꾹꾹 눌러대는 나의 이 치기어린 글자들을 내일이 되서 다시 읽고, 모레가 되면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고치고, 1년이 또 지나 내 마음이 이랬구나 하며 지난 나를 이해한다. 좋은 글은 아닐지언정 내가 좋아하는 글로 남기를 바란다. 난 언제나 내가 만드는 것에 유별난 애정을 반복하니까 어찌보면 그것마저 유별난 바람은 아니겠지.
가속화되는 이 시절을 온전히 다 이겨내려면 또 얼마나 나은 인간이 되어야할까. 현실에 치여 미뤄놨던 것들을 하나씩 해치워볼까. 겉잡을 수 없이 커진 나태함을 하나씩 때려 눕혀볼까. 역시 복싱을 배워야 할 명분은 충분하네. 며칠 후면 새롭게 만나는 또 다른 생명. 언니여도 기특하기만한 내 언니의 아이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됐다. 떳떳한 어른으로 자라야지. 나는 아직 어리니까! 아직 잘은 모르겠다만 적어도 가까운40살까지 나이를 먹는다는 건 레벨업의 과정일 것만 같지 왜. 여하튼 빨리 씻고 자고 새해를 더 더 빨리 보내주고 또 그저 그런 일상을 맞이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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